<서울 전시추천 인유럽 >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무하

2019. 12. 27. 16:51유럽여행

안녕하세요~ 프리미엄 유럽여행 인유럽입니다. 12월 연말, 추운 겨울 좋은 전시와 함께하는 건 어떨까요? 인유럽이 추천하는 전시는 바로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전시 입니다.

출처_마이아트 뮤지엄 공식 홈페이지

 

정규 도슨트

매주 화 ~ 토 총 4회 운영 (11시, 14시, 16시, 18시 예정)

정규 도슨트 추가 운영 : 매주 일요일 2회 (11시, 14시 ) *전시장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화~일요일 10:00 AM ~ 08:00 PM (입장마감 19:00)

※ 매주 월요일 휴관 , 1월 1일 / 설 연휴 정상 개관 / 2020년 1월 28일 휴관


< 관람요금 >

성인: 15,000원 , 청소년:12.000원 , 어린이:10,000원 유아 (만 36개월-증빙서류 제시):무료

이번 알폰스 무하전은 마이아트 뮤지엄 개관 특별전으로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개인 최대 규모의 컬렉션으로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230여 점을 공개합니다.

 

 

무하는 동시대의 대 예술가

고갱과 툴루즈 로트렉 사이에서도

당대의 예리한 눈을 갖고

자신만의 감성을 이끌어낸 선구자다.

-루이 아라공-

 

라비아에서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드로잉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는 알폰스 무하는 독일과 뮌헨 그리고 비엔나에서 아카데미 유학을 했습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예술 활동을 끝까지 했던 그는 사라 베르나르 주연의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를 제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사라 베르나르는 무하의 포스터 스타일을 좋아했으며 6년 동안 전속계약을 맺어 연극 포스터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의상까지 폭 넓은 활동을 합니다. 파리 벨포크 시대에 "무하 스타일"이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하고, 그가 노년이 되었을 때 조국을 위해 <슬라브 서사시> 제작을 계획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 고민하고 있을 때 미국의 부호 찰스 리처드 크레인을 만나 후원을 받으며 본격적인 슬라브 서사시를 작업 합니다. 이 서사시는 6*8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졌으며 무려 10년 동안이나 작업을 했습니다. 내용은 1000년이 넘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 사람들에 대한 주제로 그려졌으며 1912년부터 작업하기 시작해 26년에 완성해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 10주년이 되었을 대 프라하 시에 공식적으로 기증했습니다. 하지만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 나치에 통치를 받게 되고, 이때 게슈타포가 첫 번째로 체포했던 인물이 바로 알폰스 무하 였습니다. 심문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지만 건강이 나빠져 1939년 7월 14일 폐렴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제1전시 파리 연극 포스터, 사라 베르나르와 무하

 

제2전시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광고 포스터

제3전시 대중을 위한 인쇄출판물

제4전시 매혹적인 아르누보의 여인들

제5전시 고국을 위한 애국적 헌사

이번 전시는 알폰스 무하의 생애 시기를 따라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는 알폰스 무하의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사라 베르나르와 무하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전시장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 작품만은 놓치지 마세요~!

 

<지스몽다> 무하의 예술 인생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작품 지스몽다 입니다. 이 당시 파리는 벨에포크 시대 (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 프랑스가 번성했던 시대)로 다색 석판화, 그리고 대량생산으로 인해 포스터 광고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 작품은 1894년 크리스마스 날 인쇄소에서 작업할 화가를 구할 수 없어 무하에게 요청해 탄생한 작품으로 이날 밤 무하의 포스터가 길거리에 걸리자, 다음 날 아침 무하의 포스터를 가져가 암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이후 베르나르와 무하는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으며 무하의 포스터 크기와 색채감에 압도되는 작품입니다.

출처_위키백과 (사라베르나르)

"나는 닫혀있는 응접실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예술 활동을 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귀족 일부가 아닌 대중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던 무하

 

 

 

대중을 위한 인쇄 출판물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시장이 될 것 "

이번 전시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파트이기도 하고, 어떤 제품의 광고인지 맞춰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무하에게 있어서 광고는 일상에 대한 도전이었고, 광고지와 포장지를 디자인했습니다. 이 당시 프랑스 광고는 포스터에 "우리 제품은 이게 좋습니다!" 하며 장점을 나열하는 방식이었다면 이것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이 무하였으며, 에슬레와 모엣샹동도 무하 작품에 빠진 기업이었다고 합니다. 무하의 포스터를 모면 마치 내가 저 제품을 쓰며 저 작품 속에 있는 사람들처럼 될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였으며 무하는 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자신의 영감을 작품 속에서 독창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작은 액자에 촘촘히 걸려 있는 곳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장식 자료집> 을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무하가 배워왔던 미술의 지식을 담아 만든 것입니다. 무하가 죽고 난 뒤 누군가 "무하 스타일로 해주세요 " 하면 보고 할 수 있게 남겨놓은 것으로 자신만의 소유가 아닌 공유하고, 발전시켰던 무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감명 깊게 본 곳입니다.

<밀라다 체르니>

성공의 궤도에 올랐을 때 미국행을 택했던 무하, 미국에서 그는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할 수 있게 도와줄 후원자 찰스 리처드 크레인을 만나게 되며 미국에서는 상류 사회의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체코로 돌라 아 슬라스 서사시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조국을 위해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조국을 그리워한 예술가

알폰스 무하

 

 

세계대전 종전 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한 뒤 국가의 국장, 우표, 지폐 등 무상으로 디자인했으며 <슬라스 서사시> 연작까지 제작하게 됩니다. 사실 슬라브 서사시를 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엄청난 크기와 보존환경, 운반의 어려움들로 인해 뉴욕과 시카고에서 전시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알폰스 무하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 최대 규모의 컬렉션으로 알폰스 무하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소식과 이야기들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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